딱, 고렇게만 말하고 언제 우리가 싸웠냐는 듯 해맑게 웃는 얼굴에 나는 갑자기 심장이 짜르르하게 저려왔고, 그제사 전부 깨달았다. 그러니까 아마도 얘를 향한 이 절실함은 집착이나 독점욕 따위의 얄팍한 감정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런 걸로.

그러니까.

너의, 그 절대적으로 빛나는 꿈의 한 조각이라도 같이하고 싶었던 거다. 나는.
그 허름한 반지하 연습실에서 마이크를 잡은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우리가 살아나갈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반반.”
“생각보다 긍정적이다, 너.”
“정확히는,”

번쩍거리는 밝은 불빛에 인상을 쓰며 눈을 가린 지용이 숨어있는 집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헬기를 보며 대답했다.

“5퍼센트.”
“그럼 나는 5퍼센트에 배팅할게.”

“서른이면 우린 헤어져 있겠지.”

노란 햇살 아래, 노란 모래 바람 속에서, 햇살을 고스란히 받은 남자가 지용의 바로 앞으로 오는 순간, 지용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잡았다.”

낮은 목소리를 향해 지용이 손을 내밀어, 갈색 가죽재킷 끝을 쥐었다.

주루룩, 눈물 흘리는 지용의 눈가로 따뜻한 손가락이 다가와 그 눈물을 닦아내었다.

승현이 닦아낸 눈물 한 방울이, 휘이---------소리 내며 불어닥친 모래 바람 속으로 사라져갔다.

[Y.J.K. ylno ym]

God. 너는 내 안에 유일하게 군림하는 신이야. 너의 그 자체가 나의 종교니까. Daylight. 나의 햇살이며, Rest. 휴식이야. All. 나의 일부이자 모든 것이라서, Gone. 네가 떠난다면 나는 부서지겠지. On and on, 쉬지 않고 너만을 바라본 나를 위해서. Now, 이제는 네 마음을 열어줄래. 지용아.

“다음 생에도 꼭 날 알아봐야 한다?”
“그래.”
“혹 네가 날 잊어버릴지도 모르니 암호라도 정해둘까?”
“무엇으로?”

눈썹을 치켜 올리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지용은 마음에 든 암호가 생각났는지 개구지게 눈을 접었다. 그의 뺨 위로 여름을 닮은 싱그러운 웃음이 피었다.

“대한독립만세.”

“기다리고 있었어?”

몽롱했던 정신이 일순 밝아진 기분이었다.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자신을 앞질러 걷던 그는 슬쩍 미간을 찡그린 채 탑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헛소리 하지 말라며 단칼에 잘라낼 줄만 알았던 그는 그 말을 대신해 고개를 원위치 시키며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좀 심심하긴 하더라.”

“미안해.”

아아.

“미안해 권지용.”

승현아.

“그동안 너 막대한 거 다 미안해.”

최승현.

“이제 안 그럴 테니까….”

권지용이 미쳤나봐. 얼굴에 열이 몰리고, 심장은 자꾸 아프게 가슴을 쾅쾅 쳐대고. 나 진짜 미쳤나봐! 승현아! 너무 부끄러워서 네 얼굴도 못 보겠어! 한 마디도 못 하겠어. 네가 뭐라고 말 하는지도 안 들려.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어쩌지 승현아.

내가, 너

“그니까 연락은 끊지 마라.”

좋아하나봐….

권지용의 이상한 사랑이 시작됐다. 2년 연애하면서 시작한 짝사랑.

“…권지용.”
“…….”
“날 잡아.”

쾅쾅, 작지도. 크지도 않게 왼 쪽 유리창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바람 때문이겠지, 생각하며 다시 시선을 돌리려는데, 아. 이상한 낌새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설마.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정확히 열 번. 순간 머릿속에 작게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섯 번은 사랑한다, 열 번은 그립다는 뜻이야.’
‘뭐가?’
‘창문 두드리면서 노크하는 거.’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유리창 쪽으로 다가간다. 한 발짝, 한 발짝, 떨리는 걸음을 뗀다. 커튼을 열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똑바로 유리창과 마주한 그곳에는. ……아아.

최승현, 최승현. 멀고 아득한 나의 너. 최승현.

"저한테 뭐 할말 있죠 GD."
"…응.“
“편하게 말해요 GD. 그런건 부끄럽거나 뭐 그런게 아니예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당연히 오가는 말이라고요.”
“… ….”
“어서요.”
“하지만 난 아직도….”
“괜찮다니까요.”

나는 처음으로 GD에게 이 말을 듣는 날을 고대해 왔다. 고마워? 아니면 귀엽고 어색하게 고맙습니다? 아니면 미안해? 날 구해줘서 고마워? 혹시… 탑, 당신은 정말 남자다워? 오예.

“어서요.”
“… 후.”

GD는 누운채로 심호흡을 했다. 그래요 GD! 어렵지 않아요! 말해요! 내가 간절한 눈빛을 몇초간 보낸 끝에 GD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아… 내 교정기 갖다줘.”

아 네.

나는 GD를 온갖 동식물이 득실거리는 위험천만한 숲속에서 구출해준 대가로 GD에게 교정기를 갖다 주었다.

후에라도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십 해가 넘게 숨을 쉬었고 너와 함께 몇 주를 살았다 답할 테다. 그것만으로도 넘칠 만큼 충분했다. 한 생에 주어진 내 모든 자유는 그 시간들에 찬란히 빛났으니.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사랑이었다.

네 마지막 남은 온기를 끌어안고서, 피로 얼룩진 입술에 다시 내 입을 맞추면서…… 너를 전부 품기에는 이생이 부족했으니, 죽음이 갈라놓아도, 나는 너를 안겠다고.

내 가련한 연인아.

어여쁘신 그대는 내내 어여쁘소서……